Kang Haechan
2025 개인전<Flowing Moonlight>, 유나 갤러리, 서울

푸른 밤을 그리며
이채은 (독립 큐레이터)
포근하면서도 적막하다. 언뜻 보아 얄궂기도 하다. 강해찬의 회화를 애써 말로 표현하자면 그럴 테다. 이는 그의 화폭 속의 밤을 일상에서 쉽게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때문에 작가의 밤은 한때의 노스텔지어를 부른다. 환상과 현실 사이의 여름과 겨울의 밤은 실제 그런 것보다 더 아련하고, 또 어느 순간 아득함을 느끼게 한다.
현실의 풍경을 그려냈으나 작품 속 풍경이 유독 현실 같지 않은 이유는 강해찬은 공간이 아니라 그때의 시간과 대기를 그려내기 때문이다. 작가는 공기 중의 열기와 냉기, 공기의 흐름과 습기의 존재 등 분명 존재하지만 인식하지 못했던 대기의 요소들을 언제나 인식하며 풍경을 그려낸다. 작가는 이러한 요소들이 특히나 밤에 두드러진다고 말한다. 그렇기에 강해찬의 밤은 보이지 않던 것이 생동하는 환상 속의 밤이다. 순간의 감정과 현실에 기반한 기억을 바탕으로 차분히 쌓아간 물감층과 반짝이는 표면은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느슨하게 만들고, 점차 작가의 ‘밤’을 현실에서 유리시킨다. 덥고 습한 여름의 한가운데서 고즈넉한 여름을 그린 전작 <여름밤> 시리즈에서 오후와 저녁 사이의 시간에 대한 감상이 더해진 <Blue hour>을 지나 차디찬 겨울을 포근히 그려낸 겨울에 이른 그의 작업을 소개한다.
강해찬의 여름의 밤에선 해가 들지 않아 비로소 보이는 어스름한 빛을 찾을 수 있다. 작가가 일상적으로 마주하는 귀갓길의 풍경, 창밖의 모습에서 출발한 이미지는 여름의 공기와 어우러져 환상 속 여름밤의 이미지로 제시된다. 피부에 뭉근하게 묻어나는 여름밤 특유의 눅눅한 공기, 습기로 인해 번져 보이는 도시의 불빛, 그 사이로 들리는듯한 옅은 풀벌레 소리. 밤이 되어 비로소 드러난 감각들은 덥고 습한 여름밤을 그 어느 때 겪은 듯한 고즈넉한 여름밤으로 바꾸어낸다.
강해찬은 한여름 밤의 꿈처럼 펼쳐놓았던 여름밤의 다음으로 푸른 달빛이 흐르는 겨울의 밤을 제시한다. 작가는 오후와 저녁 사이의 시간을 ‘Blue hour’로 정의했다. 개와 늑대의 시간이라고도 표현되는 이 시간은 현실과 환상의 경계임과 동시에 그 경계를 허무는 시간대이다. 해가 저물수록 점차 푸르게 변하는 세상을 보며 작가는 또한 색과 온도에 대한 고민을 계속했다. 이것이 이후 작가의 겨울의 밤이 온도가 느껴지게 된 까닭이다. 작가는 겨울을 시간의 흔적이 드러나는 계절이라고 말한다. 누군가 지나간 흔적이 온기로 남는다면, 뜨겁고 눅눅한 여름밤은 그것이 여름의 흔적인지 사람의 흔적인지 가늠하기 힘들 터다. 그러나 서늘한 겨울에 이르러서는 감히 그것을 사람의 흔적이라 칭할 수 있게 된다. 그래서 작가의 겨울은 마냥 서늘하지 않고 온기가 묻어난다. 흰 눈밭 위의 발자국, 눈 천사, 서리가 낀 창문의 물방울로 이루어진 낙서 등 사람과 온도가 만들어낸 찰나의 흔적은 그렇게 푸른 밤을 따뜻하게 데운다. 마냥 서느렇고 적막할 수 있던 귀갓길은 어른거리는 실내의 불빛, 유영하는 달빛, 무언가 머물다 간 온기의 흔적으로 하여금 포근한 겨울이 되었다.








